포기해야만 산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앞에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사 그 사람으로 너희 다른 형제와 베냐민을 돌려보내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창43:14)
: 창세기를 보면 볼 때마다 꼭 잊지 않고 다시금 느끼는 것은, 야곱이란 사람은 어쩜 이렇게도 나랑 비슷할까? 이런 상황에서 생각하는 거나, 하는 짓을 보면 정말 나랑 똑같이 행동하는구나... 뭐 이런 생각에 잠기곤 한다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에서 가장 손에 꼽을 수 있는 것은, 평소에는 잘 살다가 갑자기 위기의 순간이 닥치면, 앞에서는 하나님만 의지합니다, 그러니 하나님 제발 도와주세요, 하면서 부르짖는 것이 끝나면, 뒤에서는 혹시라도 만약에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으면, 그때는 이렇게 저렇게 해야 되겠다는 후속대책을 세우는 그런 습성이다
야곱이나 나란 사람이나 솔직히 말하면 진짜로 하나님을 불신해서 그런 것은 결코 아니다, 정말 하나님을 믿는다, 그리고 평소에 다른 사람 못지않게 하나님을 잘 따른다, 하나님께서 시키는 일 부지런히 감당하며 성실하게 살아간다
그러다 갑자기 어려움이 찾아오면 그 즉시 하나님께 부르짖는다, 평소보다 더 열심히 말씀을 묵상하며 간절하게 도움을 청한다, 진짜로 하나님 한 분만 바라보려고 무진장 애를 쓰며 노력에 노력을 한다
그러나 항상 마음 한편에, 하나님께서 이번에 혹시라도 도와주시지 않으면 어떡하지? 그럴 때는 내가 어떻게 대책을 세워놔야 되지? 일단 이거는 이렇게, 저거는 저렇게 대응을 하고 난 뒤, 그때 가서 다시 생각해 보자... 뭐 대충 이런 식의 반복인 것이다
그러나 얼마 전에 야고보서를 묵상하다 알게 되었다, 이렇게 마음을 먹고사는 사람은 두 마음을 품은 자라고,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은 자라고, 만약 이렇게 살아간다면 무엇이든지 주께 받을 생각하지도 말라고 말이다
이 말씀이 나의 심령에 비수같이 꽂히고 난 후, 다시 창세기 후반부에 기록된 야곱의 인생길을 보니, 예전에 보지 못했던 하나님의 간섭하심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야곱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계획을 무참하게 물거품으로 만드시는 하나님의 그 은혜의 손길을 본 것이다
먼저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둘째 아내, 그러나 애석하게도 자기를 두고 먼저 하나님 곁으로 간 그 아내 라헬의 소생으로서, 야곱이 직접 장자권을 상징하는 채색옷을 미리 입혀 애지중지하며 키웠던 그 요셉을 야곱의 품에서 잠시 데려가셨다, 그것도 비극적인 사건으로 잃어버렸다고 착각하게 끔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가뜩이나 7년 대흉년을 버티기도 힘겨운 마당에, 더군다나 요셉까지도 잃어버린 사건 때문에 겨우 죽다 살아난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그 동생 베냐민까지 인질로 빼앗기게 될 상황이 닥쳐왔다
내가 야곱의 입장이라도 정말 더 이상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가 아니라, 이제는 살 소망이 끊어져서 차라리 그냥 혀 깨물고 죽는 게 낫겠다는 비탄에 빠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는 거기서 결국, 자신이 가지고 싶었던, 그리고 자신이 이루고 싶었던 모든 계획, 그리고 그 계획의 끝자락인 베냐민까지 전부 다 완전하게 포기하면서, 전능하신 하나님 한 분 만을 바라보게 된다, 이 바라봄은 이전 젊은 날에 가졌던 하나님을 향한 시선과는 당연히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이제는 나이도 많이 먹어서 기력도 점점 쇠하여지는 노년에, 그뿐만아니라 더 이상 쥐어짜낼 꾀는커녕, 손에 잡을 지푸라기조차 없는 그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바라본 하나님, 이제는 자신의 그 어떤 계획도 전혀 없는 이런 상황에서 바라본 하나님, 그의 마음을 그 누구보다 내가 정말 잘 안다, 그는 진짜 전심으로 하나님만 신뢰하며 바라봤으리라
그러나 다들 아시다시피,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손길 안에서, 그분의 놀라운 섭리 안에서, 야곱에게 닥친 이 화는 도리어 복으로 다가오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죽은 줄만 알았던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되어 아버지 야곱뿐만 아니라, 그 모든 식솔 전부를 살려내는 대역전극을 하나님께서 친히 이루어주셨기 때문이다
야곱과 같은 마음으로 지금까지 살아온 나는 정말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내 계획대로 살면 나와 내 처자식들은 전부 다 7년 대흉년으로 인하여 굶어죽겠지만, 하나님의 계획대로 살면 당대 최강국의 국무총리 아들이 생긴다는 것을 말이다
내 계획을 완전히 포기해야만, 그제서야 비로소 하나님의 계획이 시작된다, 나의 무계획이 바로 하나님의 계획이다